칼 럼

좌측메뉴

홈 > 회사소개 > 칼 럼
제목 축산을 사랑하는 사람과 방관하는 사람들
이름 bayer 작성일   2002.04.21

옥합을 깨 틀어 고급 향유를 뿌려주고 허리에 닿는 칠흑 같은 고운 머리카락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발을 닦아주어도 부족하기만 한 마리아의 사랑, 목숨을 던져 많은 죄지은 자 들의 죄를 대속하신 청년 예수의 사랑, 자식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가시고기 사랑 같은 조건 없는 사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조국과 민족을 사랑한 많은 애국지사들, 가족을 돌보지 않아 가장으로서 실패한 사람들이라 보는 일부 시각은 흥부는 닮지 말아야 할 무능한 사람이 되어있는 현실감에서 본다면 무리한 궤변만은 아닐 성싶다. 그러나 선각자들이 사랑하는 조국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민족사랑에 기인하지만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조용하게 빈자리를 인내해준 아름다운 여인들이 없었다면 가능치 않았으리라 생각해 본다.

 

또 새로운 한해를 맞으며 갖는 바램이겠지만 우리 축산인은 그들의 위대한 사랑을 가슴에 새기고  올 한해는 충만한 사랑이 넘치는 따스한 축산업계가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축산업의 보존을 위하여 자신의 사업을 뒤로 한 채 앞장선 양돈협회, 양계협회, 낙농비육협회, 한우협회 등 생산자 단체장들, 특별 수당도 없는 밤샘을 밥먹듯이 하는 축산ㆍ수의직 공무원들과 가축위생 방역본부 직원들은 식을 줄 모르는 정열을 보여주고 있다. 참으로 축산인 사랑 정신이 없었다면 이렇게 지속적이고 희생적인 사명감을 갖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그들의 노력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그들의 잘못 처리된 점만을 밝혀내며 잘한 것은 당연하고 잘못된 것은 태산이 무너지는 양 탁상 행정의 표본이라는 말로 몰아치곤 한다. 물론 잘못된 사항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되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 구현임은 분명하다.  불행하게도 조그마한 남의 과실은 눈에 잘 띈다. 자신에게 부적절한 조치는 자신의 행동이 불편하여지거나 재산상 제약 요건으로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사항과 제도를 반대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여도 이 사회는 이해를 해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참여하여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극적인 참여 또는 방관으로 의견 개진이 안되었다면 이는 묵시적인 동조로 보아야 된다는 것이며 만일 주어진 기회를 소극적으로 방치하였다면 그들은  100번 잘못되었다 해도 비판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사회에는 적극적인 관심으로 참여하면 비평보다는 옹호하게될 일이 훨씬 많으며 보다나은 개선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에 관여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방관하는 70-80% 사람과 비방하는 몇 사람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어온 축산인 사랑의 원천은 어디서 나오고 있을까 ?  이는 한치의 사심도 없이 주어진 직분에 충실하고 언제 가는 방관자와 비방자가 이들의 진실된 사랑을 이해하게 되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자문해 본다.                                        

 

2001년 1 월 10일 



이전글 ▶ 양돈인을 위한 네트워크는 동참으로부터 시작되어야한다
다음글 ▶ 정의라는 덕목이 필요한가